집에서 커핑 방법 익히는 순서

로스터리에서 두 원두를 나란히 내놓으면, 평소엔 둘 다 ‘산미 있는 커피’라고 하던 손님도 금세 차이를 찾습니다. 하나는 귤처럼 산뜻하고, 다른 하나는 식으면서 자두 같은 단맛이 남는다고요. 커핑은 커피를 어렵게 평가하는 시험이라기보다, 추출 변수를 맞춰 놓고 원두의 맛을 비교하는 방법입니다. 드리퍼가 없어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같은 조건으로 두 잔을 준비하기
처음에는 원두 두 종류면 충분합니다. 크기와 재질이 같은 컵 두 개, 저울, 타이머, 그라인더, 숟가락을 준비하세요. 분쇄도는 평소 종이 필터에 쓰는 것보다 약간 굵게 맞춥니다. 손으로 만졌을 때 굵은 소금 정도라는 표현도 쓰지만, 그라인더마다 입자 분포가 달라 눈대중보다는 두 원두를 같은 설정으로 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커피가치평가에 쓰이는 스페셜티커피협회 기준은 컵 용량 150mL당 원두 8.25g입니다. 집에서는 물을 가득 담았을 때 200mL 들어가는 컵이라면 원두 11g으로 계산하면 편합니다. 컵이 150mL라면 8.25g입니다. 컵마다 물을 담아 무게를 재면 용량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비교하는 날에는 두 컵의 원두 무게와 물의 양을 같게 맞추세요. 1g 차이는 작은 컵에서 생각보다 크게 느껴집니다.
물은 냄새가 없는 식수를 쓰고, 두 잔 모두 같은 물로 준비합니다. 물맛이 강한 생수나 염소 냄새가 나는 수돗물은 커피 향을 가릴 수 있습니다. 원두 봉투에는 로스팅 날짜도 적어 두면 좋습니다. 같은 산지의 원두라도 볶은 뒤 지난 시간과 보관 상태가 다르면 비교할 때 향의 선명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향을 맡고 물을 붓는 순서
각 컵에 원두를 따로 계량하고, 커핑 직전에 분쇄합니다. 한 원두를 간 뒤 다른 원두로 바꿀 때는 새 원두를 조금 갈아 그라인더 안에 남은 가루를 밀어내면 향이 덜 섞입니다. 물을 붓기 전에는 마른 가루의 향을 먼저 맡아 보세요. 견과류, 말린 과일, 꽃처럼 구체적인 말이 떠오르면 적고, 떠오르지 않으면 ‘고소함이 강함’ 정도로 써도 됩니다.
물 온도는 붓는 시점에 약 93℃로 맞춥니다. 온도 조절 주전자가 없다면 온도계 하나면 충분합니다. 두 컵에 물을 같은 속도로 부어 가루가 모두 젖게 한 뒤 타이머를 시작합니다. 이때 젓지 않습니다. 가루가 위에 둥둥 뜨며 층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크러스트라고 부릅니다. 물을 붓자마자 맡은 향과 조금 지나 올라오는 향도 다를 수 있습니다.
4분 뒤 표면을 걷고 맛보기
물을 부은 지 4분쯤 지나면 숟가락으로 표면의 가루층을 뒤쪽으로 세 번 밀어 깨뜨립니다. 얼굴을 컵 가까이 가져가면 한꺼번에 올라오는 향을 맡기 좋습니다. 스페셜티커피협회의 현행 준비 기준은 이 단계를 물을 부은 뒤 3~5분 사이에 하도록 안내합니다. 집에서는 매번 4분으로 고정하면 비교가 수월합니다. 두 컵에 같은 동작을 한 뒤 떠 있는 거품과 가루를 숟가락으로 걷어냅니다. 가라앉은 가루까지 휘저을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마시면 뜨거움 때문에 맛을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몇 분 기다렸다가 한 모금씩 떠서 맛봅니다. 전문 커핑에서는 커피를 공기와 함께 짧게 들이마시듯 맛보지만, 처음부터 소리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서 혀 전체에 닿게 하면 됩니다. 숟가락은 컵을 옮길 때마다 뜨거운 물에 헹구세요.
뜨거울 때, 따뜻할 때, 미지근할 때 적어도 세 번 맛보면 변화가 보입니다. 뜨거울 때는 향이 화사했던 커피가 식으면서 단맛을 드러내기도 하고, 처음엔 얌전했던 커피에서 거친 쓴맛이 남기도 합니다. ‘식으면 맛이 없다’로 끝내기보다 어느 온도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적어 두면 다음 추출에도 쓸 수 있는 기록이 됩니다.
맛을 비교할 때 볼 것
저는 처음 커핑하는 손님에게 향미 이름을 많이 맞히라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산미가 밝은지 둔한지, 단맛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 입안에서 가볍거나 묵직한지, 삼킨 뒤 거친 느낌이 남는지를 물어봅니다. ‘레몬’이라는 표현이 낯설다면 ‘새콤한 사과’라고 적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같은 자리에서 두 컵을 오가며 느낀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A는 뜨거울 때 꽃 향이 강하지만 식으면 얇게 느껴지고, B는 향이 조용해도 식을수록 단맛이 길게 남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원두인지는 취향과 마시는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유를 넣을 생각이라면 B의 단맛과 묵직함이 반가울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맑은 핸드드립을 즐긴다면 A의 향을 더 살리고 싶을 겁니다.
커핑에서 산미가 선명한데 집에서 내린 커피만 텁텁하다면 분쇄가 너무 곱거나 물이 천천히 빠지는지 살펴볼 만합니다. 커핑에서도 향이 흐리고 맛이 밋밋하다면 추출 기구를 바꾸기 전에 원두의 로스팅 날짜와 보관 상태를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제 로스터리에서도 이렇게 두 잔을 나란히 놓고 맛본 뒤에야 손님이 원하는 방향을 더 정확히 알 때가 많습니다. 커핑 기록은 좋은 맛의 정답이라기보다, 다음 잔을 원하는 쪽으로 옮겨 가는 작은 지도에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