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특징을 맛으로 구별하는 방법

로스터리에서 예가체프를 처음 마신 손님이 “커피에서 꽃향기가 나네요”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같은 원두를 집에 가져가서는 레몬처럼 시기만 하다고 돌아오기도 하고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특징은 향긋한 산미 한 가지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가공 방식과 로스팅, 추출 온도에 따라 잔에서 드러나는 모습이 꽤 달라집니다.
꽃향과 레몬 같은 산미는 어떻게 느껴질까
예가체프는 에티오피아 남부 게데오 지역의 커피 산지 이름입니다. 흔히 재스민, 레몬, 베르가모트, 홍차 같은 표현이 따라붙습니다. 에티오피아 커피·차 당국도 예가체프를 꽃향과 과일 향, 차 같은 질감이 있는 커피로 소개합니다. 다만 레몬 맛이 첨가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입에 머금었을 때 침이 도는 밝은 산미와 코로 올라오는 향을 익숙한 음식에 빗댄 말이지요.
제가 매장에서 손님에게 맛을 설명할 때는 뜨거운 첫 모금만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뜨거울 때는 산미가 먼저 튀고 향은 잡기 어렵습니다. 조금 식은 뒤에는 꽃향이 또렷해지고, 더 식으면 단맛과 여운이 보입니다. 같은 잔을 세 번쯤 나눠 마셔 보면 ‘시다’고 느꼈던 맛이 과일의 산뜻함인지, 추출이 덜 돼 생긴 날카로움인지 구별하기 쉬워집니다.
예가체프라고 적힌 모든 봉지가 같은 맛을 내지는 않습니다. 생산 마을과 가공장, 수확 시기, 로스팅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포장에 적힌 향미 표현은 기대할 방향을 알려주는 단서 정도로 읽는 편이 좋습니다. 재스민이 적혀 있는데 본인에게는 귤껍질처럼 느껴져도 틀린 맛은 아닙니다.
워시드와 내추럴을 먼저 구별하기
예가체프를 고를 때 제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글자는 가공 방식입니다. 워시드는 수확한 커피 열매에서 과육을 벗기고 처리한 뒤 말립니다. 대체로 맛의 윤곽이 깨끗해 꽃향, 감귤류 산미, 차처럼 가벼운 질감이 잘 드러납니다. 내추럴은 열매째 말리는 방식입니다. 잘 만든 내추럴에서는 베리류와 잘 익은 과일을 떠올리게 하는 향, 조금 더 묵직한 단맛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커피인지는 취향 문제입니다. 한 손님은 워시드의 맑은 끝맛을 좋아했고, 다른 손님은 같은 산지의 내추럴을 마시고서야 예가체프가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산뜻한 홍차를 좋아한다면 워시드부터, 과일 향이 진한 커피를 원한다면 내추럴부터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줄어듭니다. 발효 향이 강한 로트도 있으니 향미 설명에 와인이나 발효 과일 같은 말이 있다면 그 부분까지 읽어두면 좋습니다.
원두를 살 때는 로스팅 날짜와 볶은 정도를 보기
예가체프의 꽃향을 기대한다면 보통 밝게 볶은 원두가 출발점입니다. 볶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산뜻한 향은 줄고 견과류나 초콜릿을 떠올리게 하는 볶은 향이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진하게 볶은 예가체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산미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편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같은 이름의 원두라도 로스팅 정도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로스팅 날짜도 봅니다. 볶은 직후의 원두는 가스가 많아 물이 고르게 스며들지 않을 수 있고, 오래 열어 둔 원두는 향이 약해집니다. 저는 밝게 볶은 원두를 샀다면 밀봉해 두었다가 며칠 뒤부터 맛의 변화를 확인합니다.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고 고정하기보다, 첫 추출에서 가스가 지나치게 올라오거나 맛이 거칠면 하루 이틀 뒤 다시 내리는 쪽이 정확합니다. 개봉한 원두는 빛과 열을 피하고 밀폐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집에서 꽃향을 살리는 추출 수치
핸드드립이라면 원두 15g에 물 240g, 물 온도 92~94℃에서 시작해 봅니다. 중간보다 조금 가는 분쇄도로 갈고, 처음 40g을 부어 30~40초 기다린 뒤 나머지 물을 두세 번 나눠 붓습니다. 전체 추출 시간은 대략 2분 30초에서 3분 30초를 기준으로 잡습니다. 필터와 드리퍼, 원두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출발 수치이지 반드시 맞춰야 하는 기록은 아닙니다.
맛이 레몬즙처럼 날카롭고 속이 비어 있다면 먼저 분쇄도를 조금 더 가늘게 하거나 물 온도를 1~2℃ 올려 봅니다. 반대로 향은 약한데 혀에 마르는 듯한 쓴맛이 남으면 조금 굵게 갈거나 붓는 횟수를 줄입니다. 한 번에 여러 조건을 바꾸면 무엇이 맛을 바꿨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저는 매장에서 한 잔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분쇄도 하나부터 고칩니다.
물도 의외로 큰 변수입니다. 같은 원두를 같은 레시피로 내려도 물에 녹아 있는 성분이 다르면 산미와 단맛의 균형이 달라집니다. 집에서 예가체프가 유난히 밋밋하다면 비싼 장비를 사기 전에 다른 생수로 한 잔 내려 비교해 보는 게 낫습니다. 주전자에 온도 표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물을 끓인 뒤 잠깐 식혀 쓰고, 저울로 원두와 물의 양만 맞춰도 맛의 편차가 꽤 줄어듭니다.
내 취향의 예가체프를 찾는 순서
처음 한 봉지를 고른다면 ‘예가체프’라는 이름만 보지 말고 가공 방식, 로스팅 정도, 로스팅 날짜를 함께 확인합니다. 맑고 가벼운 커피를 원하면 밝게 볶은 워시드, 과일의 단맛을 원하면 내추럴이 좋은 출발점입니다. 마셔 보고 산미가 마음에 드는데 향이 약했다면 다음 봉지로 넘어가기 전에 분쇄도와 물부터 조절해 봅니다. 원두가 가진 맛과 내가 만든 맛을 구분하는 과정이니까요.
제게 예가체프의 재미는 첫 모금의 화려함보다 식어 가는 동안 달라지는 향에 있습니다. 어떤 날은 레몬이, 어떤 날은 꽃차 같은 여운이 남습니다. 그 차이를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집에서 내린 한 잔도 훨씬 선명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