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드립 머신으로 집에서도 맛을 맞추는 방법

얼마 전 로스터리 손님이 같은 원두를 쓰는데 집에서는 맛이 밋밋하다고 하셨습니다. 원두를 다시 사기 전에 집에서 쓰는 핸드드립 머신의 물 양과 분쇄도를 물었죠. 원두 20g에 물을 눈대중으로 붓고 계셨고, 분쇄도는 에스프레소에 가까울 만큼 고왔습니다. 몇 가지 수치를 맞추니 다음 방문에는 ‘이제 단맛이 난다’고 하셨어요. 집에서 맛이 달라질 때는 이런 작은 차이부터 보는 편이 빠릅니다.
핸드드립 머신은 물을 어떻게 붓는지부터 다릅니다
핸드드립 머신이라고 부르는 제품은 대체로 물을 데워 원두 위에 자동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입니다. 사람 손으로 물줄기를 조절하는 드립과 달리, 한 번 설정하면 비슷한 흐름을 반복하기 쉽습니다. 아침마다 같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 분에게는 이 점이 꽤 편합니다.
다만 물이 원두층 전체에 고르게 닿는지는 제품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추출이 끝난 필터를 봤을 때 가운데만 깊게 파이고 가장자리에 마른 가루가 남는다면, 물이 한곳으로 몰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이 퍼져 나오는 샤워헤드의 형태와 물이 떨어지는 범위를 눈여겨볼 이유입니다. 추출 중 원두층을 한 번 가볍게 저어주는 방법도 있지만, 매번 손을 대야 한다면 자동 추출의 편리함은 조금 줄어듭니다.
한 잔만 자주 내린다면 최소 추출량도 확인해야 합니다. 큰 서버를 채우도록 만든 머신에 원두를 조금만 넣으면 물줄기가 원두층을 충분히 적시지 못할 수 있거든요. 제가 손님에게 기구를 고를 때 먼저 묻는 것도 예산보다 ‘한 번에 몇 잔을 마시는지’입니다.
처음에는 원두와 물의 비율을 고정합니다
맛을 맞출 때 제가 잡는 출발점은 원두 15g에 물 240g입니다. 원두와 물이 1대 16인 셈이죠. 두 잔이면 원두 30g에 물 480g으로 늘리면 됩니다. 이 수치가 모든 원두의 정답은 아닙니다. 다만 비율을 고정해야 다음 잔에서 무엇을 바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계량스푼은 원두 크기와 볶은 정도에 따라 담기는 무게가 달라집니다. 저렴한 전자저울 하나가 새 머신보다 맛을 안정시키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물통 눈금도 편리하지만, 처음 몇 번은 실제로 넣는 물의 무게를 재 보세요. 머신 안에 남는 물과 커피 찌꺼기가 머금는 물 때문에 서버에 모인 양은 넣은 양보다 적습니다. 레시피의 물 240g은 서버에 나온 커피가 아니라 물통에 넣은 물을 뜻합니다.
분쇄는 중간 굵기에서 시작합니다. 소금 알갱이와 비슷하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라인더마다 눈금이 달라, 한 번 내린 맛을 기준으로 조절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커피가 시고 묽다면 한두 단계 곱게, 쓰고 텁텁하다면 한두 단계 굵게 갈아봅니다. 한 번에 여러 조건을 바꾸면 맛이 좋아져도 이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물 온도와 추출 시간은 함께 봅니다
제가 드립 레시피를 잡을 때 출발점으로 삼는 물 온도는 보통 92~96℃입니다. 하지만 머신 물통에 부은 물의 온도가 곧 원두에 닿는 온도는 아닙니다. 기계가 물을 데우는 방식, 예열 상태, 한 번에 내리는 양에 따라 추출 중 온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온도 조절 기능이 있다면 중간값에서 시작하고, 없다면 분쇄도와 원두 양부터 맞추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원두 15g으로 한 잔을 내렸는데 물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향이 옅다면 분쇄를 조금 곱게 해볼 만합니다. 반대로 필터에 물이 오래 고이고 뒷맛이 거칠다면 분쇄를 굵게 하거나 필터가 접혀 물길을 막지 않았는지 살펴봅니다. 2분 30초에서 4분 정도는 한두 잔의 상태를 살펴볼 만한 출발 범위입니다. 머신의 물 공급 방식과 추출량에 따라 달라지므로 초시계 숫자만 맞추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뜸 들이기 기능이 있는 제품이라면 원두를 먼저 적시고 30~45초가량 기다린 뒤 나머지 물을 보내는 설정부터 써볼 수 있습니다. 갓 볶은 원두는 가스가 나오며 부풀어 물이 고르게 스며들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다만 뜸 기능 하나로 맛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원두 양과 분쇄가 어긋난 상태라면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머신을 고를 때와 오래 쓸 때 보는 것
가격을 나눠 본다면, 한두 잔을 가끔 내리는 경우에는 복잡한 설정이 없는 기본형부터 생각해도 됩니다. 대신 필터 규격을 구하기 쉬운지, 물이 원두층에 넓게 닿는지, 씻기 어려운 틈이 많은지를 봅니다. 매일 여러 잔을 내린다면 추출량에 맞는 용량과 보온 서버가 유용합니다. 온도나 물 공급 간격을 조절하는 상위 제품은 여러 원두의 맛을 세밀하게 비교할 때 값어치를 합니다. 그런 조절을 즐기지 않는다면 높은 가격을 낼 이유는 적습니다.
커피를 오래 뜨거운 열판에 두면 처음의 향이 줄고 맛이 거칠어질 수 있습니다. 바로 마시지 않을 커피라면 보온 서버로 옮기거나 필요한 양만 내리는 편이 낫습니다. 사용 뒤에는 필터 바스켓과 서버의 기름기를 씻고, 물이 닿는 내부는 제품 설명에 맞춰 관리합니다. 묵은 커피 기름 냄새는 새 원두의 향까지 가립니다.
원두를 산 날짜도 확인합니다. 봉투를 연 뒤 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면 온도와 분쇄를 조절해도 예전 맛을 그대로 되찾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로스팅 날짜가 적힌 원두를 마실 만큼씩 사고, 개봉 후에는 밀봉해 빛과 열을 피해 두는 쪽을 권합니다. 핸드드립 머신의 장점은 손맛을 대신해 준다는 데보다, 내가 좋아한 한 잔의 조건을 다음 날에도 다시 만들어 준다는 데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