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타 그라인더로 집 커피 맛 맞추는 방법

집에서 맛이 흐려질 때 먼저 보는 것
얼마 전 단골 손님이 칼리타 그라인더를 들고 와서 물었습니다. 같은 원두를 샀는데 매장에서는 단맛이 나고 집에서는 떫고 묽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원두 봉투를 보니 볶은 지 6일째, 보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대개 원두보다 분쇄도와 물 온도 쪽을 먼저 봅니다.
칼리타 그라인더는 홈카페 입문자에게 꽤 오래 사랑받은 기구입니다. 손으로 돌리는 핸드밀 계열도 있고, 전동 그라인더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떠올리는 건 칼리타 KH-3 같은 클래식한 수동 그라인더일 겁니다. 나무 몸통에 쇠날이 들어간 그라인더죠. 감성도 있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균일한 맛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장비는 아닙니다.
수동 그라인더의 맛은 세 가지에 많이 흔들립니다. 분쇄도 조절, 돌리는 속도, 그리고 남아 있는 미분입니다. 여기서 미분은 아주 고운 커피 가루입니다. 적당히 있으면 바디감을 만들지만 많아지면 쓴맛과 텁텁함을 키웁니다. 특히 칼리타 그라인더를 너무 빠르게 돌리면 가루 크기가 더 들쭉날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칼리타 그라인더 분쇄도 맞추는 방법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준점을 잡는 겁니다. 핸드밀은 숫자 다이얼이 없는 모델도 많아서 “몇 칸”보다 “맛의 방향”으로 맞추는 편이 좋습니다. 드리퍼가 칼리타 웨이브나 일반 칼리타 드리퍼라면 중간 분쇄부터 시작합니다. 손가락으로 만졌을 때 설탕보다는 조금 굵고 굵은 소금보다는 가는 정도입니다.
저는 처음 세팅할 때 원두 15g, 물 240g으로 봅니다. 물 온도는 중배전 기준 90~92도, 약배전이면 92~94도, 강배전이면 86~89도 정도가 무난합니다. 추출 시간은 2분 30초에서 3분 10초 사이를 먼저 노립니다. 이 범위에서 맛이 너무 시면 조금 더 곱게, 쓴맛과 떫은맛이 올라오면 조금 더 굵게 조절합니다.
- 물이 2분 안에 다 빠지고 맛이 날카롭다면 분쇄도를 한 단계 곱게 맞춥니다.
- 3분 30초를 넘기고 입안이 마르면 분쇄도를 굵게 풉니다.
- 단맛은 있는데 향이 약하면 물 온도를 1~2도 올려봅니다.
- 쓴맛은 강한데 농도가 약하면 원두 양보다 분쇄 균일도를 먼저 의심합니다.
칼리타 그라인더는 조절 나사를 조금만 돌려도 체감이 큽니다. 그래서 한 번에 많이 바꾸면 원인을 잃어버립니다. 저는 1회 조정 폭을 8분의 1바퀴나 4분의 1바퀴 안에서 잡습니다. 귀찮아 보여도 이렇게 해야 다음 잔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핸드드립과 모카포트에서 다른 점
칼리타 그라인더를 산 뒤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모든 기구에 같은 분쇄도를 쓰는 겁니다. 핸드드립, 프렌치프레스, 모카포트는 물이 커피를 통과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당연히 가루 크기도 달라져야 합니다.
핸드드립
핸드드립은 중간 분쇄가 출발점입니다. 칼리타 드리퍼는 바닥 구멍이 작고 물 흐름이 안정적인 편이라 너무 곱게 갈면 쉽게 답답해집니다. 특히 101, 102 같은 사다리꼴 드리퍼는 필터가 벽에 붙는 면적도 있어서 배수가 느려질 수 있습니다. 15g 기준으로 30g 뜸, 이후 70g씩 나누어 240g까지 붓는 방식이면 손맛이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모카포트
모카포트는 핸드드립보다 조금 더 곱게 갑니다. 다만 에스프레소처럼 곱게 갈면 안 됩니다. 칼리타 수동 그라인더로 아주 곱게 밀어붙이면 압이 과하게 걸리고, 쓴맛이 빠르게 올라옵니다. 만졌을 때 고운 설탕 정도면 출발점으로 괜찮습니다. 물은 안전밸브 아래까지, 바스켓은 눌러 담지 않고 평평하게만 맞춥니다.
프렌치프레스
프렌치프레스는 굵은 분쇄가 편합니다. 너무 곱게 갈면 컵 바닥에 가루가 많이 남고, 입안에서 질감이 거칠어집니다. 18g에 물 300g, 4분 침지 후 표면을 살짝 걷어내고 5분 정도 더 기다리면 맑은 쪽으로 갑니다. 칼리타 그라인더의 미분이 신경 쓰인다면 추출 뒤 바로 따르지 말고 1분만 더 가만히 두는 것도 좋습니다.
맛이 안 맞을 때 보는 순서
사실 집 커피는 한 번에 여러 변수를 바꾸면 더 헷갈립니다. 원두 양도 바꾸고, 물 온도도 바꾸고, 분쇄도도 바꾸면 어느 쪽이 맛을 움직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손님들에게 늘 순서를 정해두라고 말합니다. 먼저 분쇄도, 그다음 물 온도, 원두 양입니다.
예를 들어 커피가 시고 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덜 우러났거나 원두 자체가 밝은 산미를 가진 경우입니다. 이때 분쇄도를 조금 곱게 하고 추출 시간을 20~30초 늘려봅니다. 그래도 신맛이 선명하면 물 온도를 1도 올립니다. 그런데 떫은맛이 같이 올라오면 더 우려내는 쪽이 아니라 레시피 균형이 무너진 겁니다.
반대로 쓴맛이 입천장에 오래 남으면 추출이 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분쇄도를 굵게 하거나 물 온도를 낮춥니다. 강배전 원두는 90도만 넘어도 탄맛이 도드라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다크 로스팅 블렌드는 87도 전후에서 시작합니다. 단맛이 충분하고 향이 답답하지 않으면 굳이 더 높은 온도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 신맛이 얇게 튀면 더 곱게 갈고 시간을 늘립니다.
- 쓴맛이 무겁게 남으면 더 굵게 갈거나 물 온도를 낮춥니다.
- 향은 좋은데 밍밍하면 원두를 1g 늘립니다.
- 컵마다 맛이 다르면 돌리는 속도와 원두 투입량을 일정하게 맞춥니다.
칼리타 그라인더를 오래 쓰는 관리법
칼리타 그라인더는 구조가 단순해서 오래 갑니다. 대신 커피 오일과 미분이 안쪽에 쌓이면 향이 탁해집니다. 특히 강배전 원두를 자주 쓰면 날 주변에 기름기가 빨리 붙습니다. 이 상태로 밝은 원두를 갈면 산뜻한 향보다 오래된 견과류 같은 냄새가 먼저 올라올 수 있습니다.
매일 쓴다면 일주일에 한 번은 브러시로 날 주변을 털어주는 게 좋습니다. 물 세척은 권하지 않습니다. 금속 부품에 습기가 남으면 녹이 생길 수 있고, 나무 몸통도 틀어질 수 있습니다. 분해가 가능한 모델이라면 부품 순서를 사진으로 남기고 천천히 풀어야 합니다. 작은 와셔 하나만 방향이 달라져도 조절감이 이상해집니다.
원두는 한 번에 너무 많이 넣고 갈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15~20g 정도를 일정한 속도로 돌리면 손에 무리도 덜하고 입자도 비교적 안정됩니다. 힘으로 누르듯 돌리기보다 손목을 편하게 두고 일정한 박자로 돌리는 게 좋습니다. 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지거나 헛도는 느낌이 들면 안쪽에 원두 조각이 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싼 그라인더가 항상 필요한 건 아닙니다. 다만 칼리타 그라인더를 쓰면서 매번 같은 맛을 기대한다면 기록은 필요합니다. 원두 이름, 볶은 날짜, 분쇄 조절 위치, 물 온도, 추출 시간을 적어두면 다음 잔이 훨씬 쉬워집니다. 커피는 감각으로 마시지만, 맛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건 숫자일 때가 많습니다. 집에서 내린 잔이 조금씩 또렷해지는 순간은 꽤 조용하게 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