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로스팅을 처음 시작할 때 맛을 잡는 방법

얼마 전 손님이 집에서 볶은 원두를 한 봉지 가져왔습니다. 향은 고소한데 커피로 내리니 풀 냄새가 남는다고 했죠. 원두를 보니 겉은 갈색이고 가운데는 아직 밝았습니다. 홈로스팅에서 처음 부딪히는 문제는 대개 원두 선택보다 열을 고르게 주고, 멈출 때를 잡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생두 한 종류와 작은 배치로 시작한다
첫 배치에는 생두 100g이면 충분합니다. 양이 적어 색 변화를 보기 쉽고, 맛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음 배치에서 바로 고칠 수 있습니다. 같은 생두로 두세 번 볶아야 시간과 불 조절이 맛에 어떤 차이를 냈는지도 알 수 있고요. 처음부터 산지와 가공법이 다른 생두를 번갈아 쓰면 볶는 방식의 차이를 읽기 어렵습니다.
생두는 크기가 지나치게 제각각이지 않은 것으로 고릅니다. 깨지거나 검게 변한 알이 눈에 띄면 볶기 전에 골라내고요. 밝고 향긋한 커피를 좋아한다면 산미가 선명한 생두를, 묵직한 맛을 좋아한다면 단맛과 바디감이 좋은 생두를 고를 수 있습니다. 다만 산지 이름만으로 볶는 시간을 정하지는 않습니다. 같은 산지라도 수분 상태와 알 크기에 따라 반응이 다릅니다.
팬으로 볶을 때는 불보다 움직임을 먼저 본다
두꺼운 팬, 주걱, 저울, 타이머, 금속 채반을 준비합니다. 팬은 중불로 예열하고 생두를 넣은 뒤 계속 저어 줍니다. 제가 집에서 팬 로스팅을 가르칠 때는 100g을 한 겹에 가깝게 펼칠 수 있는 크기를 먼저 확인합니다. 원두가 겹겹이 쌓이면 아래쪽은 타고 위쪽은 덜 익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풋내가 나다가 색이 노랗게 바뀌고, 이어 빵이나 곡물 같은 향이 납니다. 이 구간에서 한쪽 면에 검은 반점이 생기면 불이 너무 세거나 원두가 충분히 움직이지 않은 겁니다. 팬을 잠깐 불에서 들고 열을 낮춘 뒤 다시 고르게 저어 주세요. 센 불로 시간을 줄이려 하면 겉색만 빨리 짙어질 수 있습니다.
팬 로스팅에서는 첫 번째 팝콘 터지는 듯한 소리, 이른바 1차 크랙이 대략 8~15분 사이에 들릴 수 있습니다. 팬의 두께, 화력, 생두 양에 따라 달라지므로 분 단위 숫자만 믿지는 않습니다. 소리가 시작된 시각과 그때의 색, 냄새를 함께 적어 두는 편이 다음 배치에 훨씬 쓸모 있습니다. 소리가 한두 번 났다고 곧바로 모든 알이 같은 상태가 된 것도 아닙니다.
멈추는 시점과 식히는 속도가 맛을 바꾼다
첫 시도라면 1차 크랙이 이어진 뒤 원두 색이 비교적 고르게 갈색이 되었을 때 불을 끄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을 만합니다. 더 밝게 끝내면 산뜻한 향을 살릴 수 있지만 속까지 충분히 익지 않았을 때는 풋내와 날카로운 신맛이 남습니다. 조금 더 볶으면 단맛과 구운 향이 늘 수 있고, 지나치면 원두마다 다른 향보다 탄 맛이 앞섭니다. 어느 쪽이 좋은지는 취향의 문제지만, 왜 그런 맛이 났는지는 기록으로 좁혀 갈 수 있습니다.
불을 끈 다음에도 뜨거운 팬에 원두를 그대로 두면 로스팅이 계속됩니다. 바로 금속 채반으로 옮겨 흔들거나 두 채반 사이를 오가게 해 열을 빼 주세요. 원두 사이에 섞인 얇은 껍질도 이때 떨어집니다. 채반과 원두는 뜨거우니 맨손으로 만지지 않습니다.
볶는 동안에는 환풍기를 켜고 창을 열어 연기와 냄새가 빠지게 합니다. 얇은 껍질이 화구 주변에 쌓이지 않게 치우고, 팬을 올린 채 자리를 비우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연기가 갑자기 짙어지거나 타는 냄새가 강하면 볶기를 멈추고 열원을 끈 뒤 안전하게 식힙니다. 처음부터 짙은 로스팅을 노릴 필요는 없습니다. 색이 급격히 바뀌는 구간일수록 멈출 여유가 적습니다.
다음 잔을 위해 무게와 추출을 함께 기록한다
완전히 식은 원두의 무게를 재면 눈으로 본 색 외에 비교할 숫자가 하나 생깁니다. 생두 100g이 볶은 뒤 85g이라면 무게 감소율은 15%입니다. 계산은 ‘볶기 전 무게에서 볶은 뒤 무게를 뺀 값 ÷ 볶기 전 무게 × 100’입니다. 같은 생두를 비슷한 양으로 볶았을 때 참고할 만한 값이지, 15%가 맛있는 원두의 기준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볶은 직후 바로 내리면 향이 요란한데 맛은 거칠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원두에서 가스가 빠져나오는 시간을 주기 위해 먼저 하루 정도 쉬게 한 뒤 맛을 봅니다. 다 식은 원두는 밀폐 용기에 담고 볶은 날짜를 적어 두면 좋습니다. 같은 원두라도 볶은 다음 날과 며칠 뒤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맛을 비교할 때는 추출 조건도 고정합니다. 예를 들어 원두 15g에 물 250g, 물 온도 92℃로 같은 방식으로 내려 봅니다. 신맛이 거칠면 로스팅만 탓하기 전에 분쇄도가 너무 굵거나 물 온도가 낮지 않았는지 확인합니다. 반대로 같은 추출에서 풋내가 반복된다면 다음 배치는 1차 크랙 이후 조금 더 진행해 볼 근거가 생깁니다.
홈로스팅에 처음부터 비싼 장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팬은 열과 원두의 움직임을 몸으로 익히기 좋고, 전용 로스터는 여러 배치를 비슷하게 재현하고 싶을 때 값어치를 합니다. 저는 첫 잔의 완성도보다 두 번째 배치에서 무엇을 바꿀지 말할 수 있는 기록을 더 좋아합니다. 그 기록이 쌓이면 집에서도 좋아하는 맛에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