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 커피 유래를 알고 제대로 만드는 방법

얼마 전 로스터리에서 아이리시 커피를 내렸더니 한 손님이 크림부터 저어 마시려 했습니다.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하고, 차가운 크림을 통과해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셔 보시라 했죠. 같은 재료인데도 입에 닿는 순서가 달라지니 맛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리시 커피 유래를 알고 나면 왜 이 음료가 층을 이루는지, 집에서는 무엇을 먼저 챙겨야 하는지도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아이리시 커피는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이름 때문에 아일랜드의 오래된 가정식 커피를 떠올리기 쉽지만, 널리 전해지는 탄생 장소는 아일랜드 서부의 포인스 비행정 터미널입니다. 포인스 비행정 박물관은 1943년 겨울, 악천후로 출발했다가 돌아온 승객들을 위해 요리사 조 셰리던이 뜨거운 커피에 아일랜드 위스키를 넣었다고 소개합니다. 긴 비행을 기대했다가 다시 추위 속에 내려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한 잔을 건넨 셈입니다.
박물관 기록에 따르면 셰리던은 몇 주 뒤 크림을 얹은 음료를 손잡이 달린 잔에 담아 선보였습니다. 여행객의 몸을 데우려고 만든 커피가 눈으로도 기억되는 음료가 된 순간이죠. 승객이 브라질 커피냐고 묻자 셰리던이 아이리시 커피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이런 대화는 당시의 분위기를 보여 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포인스의 비행정 운항이 끝난 뒤에도 셰리던은 새넌 공항에서 이 커피를 계속 냈습니다. 그래서 탄생 장소를 포인스, 이후 여행객에게 알려진 장소를 새넌으로 구분하면 두 지명이 함께 등장하는 이유가 풀립니다.
미국에서 유명해진 데에는 크림이 한몫했다
아이리시 커피가 바다를 건너 널리 알려진 무대는 샌프란시스코의 부에나 비스타 카페입니다. 여행 작가 스탠턴 델라플레인이 아일랜드에서 마신 커피를 전했고, 카페 주인 잭 케플러가 그 맛을 재현했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카페는 1952년 이 음료를 선보였다고 기록합니다. 포인스에서 만들어진 커피가 미국의 바에서 더 많은 손님을 만난 것이죠.
재현 과정에서 까다로웠던 부분은 커피보다 크림이었다고 합니다. 뜨거운 액체 위에 크림이 가라앉거나 퍼지면, 첫 모금에서 느껴야 할 온도 차가 사라집니다. 로스터리에서도 크림을 너무 오래 휘핑하면 두꺼운 덩어리가 되어 커피와 따로 놀고, 너무 묽으면 붓자마자 섞입니다. 보기 좋은 흰 층은 장식인 동시에 맛의 일부입니다.
한 잔을 만들 때 지키는 순서
국제바텐더협회의 현재 표준 레시피는 아일랜드 위스키 50㎖, 뜨거운 커피 120㎖, 차가운 생크림 50㎖, 설탕 1작은술입니다. 집에서 처음 만들 때는 이 비율을 출발점으로 삼으면 편합니다. 다만 크림 50㎖가 부담스럽다면 양을 조금 줄여도 됩니다. 중요한 건 위스키의 향, 커피의 쓴맛, 크림의 지방감이 서로를 지우지 않는 균형입니다.
- 내열 잔에 뜨거운 물을 잠시 담아 데운 뒤 물을 버립니다. 차가운 잔에 커피를 부으면 위스키까지 섞는 동안 온도가 빠르게 떨어집니다.
- 뜨거운 커피 120㎖에 설탕 1작은술을 녹이고 아일랜드 위스키 50㎖를 넣어 저어 줍니다. 설탕은 단맛을 더하면서 크림이 뜨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 차가운 생크림을 흐를 정도로만 가볍게 휘핑합니다. 숟가락 뒷면을 커피 표면 가까이 대고 크림을 천천히 흘려 넣습니다.
- 크림을 올린 뒤에는 젓지 않고 마십니다. 입술에는 차가운 크림이 먼저 닿고, 그 아래로 따뜻한 커피와 위스키가 따라옵니다.
집에 위스키가 많지 않다면 먼저 30㎖로 만들어 맛을 본 뒤 다음 잔에서 조절해도 좋습니다. 대신 위스키를 줄였다는 이유로 커피까지 진하게 뽑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 모금에서 커피 맛이 분명하게 느껴지면 충분합니다.
원두와 추출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아이리시 커피에서는 산미가 날카롭게 튀는 원두보다 초콜릿, 견과류, 캐러멜 쪽 향이 있는 중배전 원두가 다루기 편했습니다. 그렇다고 산미 있는 원두가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밝은 과일 향을 좋아한다면 위스키 양을 조금 낮추고 설탕을 조절하면 됩니다. 제 로스터리에서는 같은 비율로 두 잔을 만든 뒤 손님 취향에 맞는 쪽을 고릅니다.
드리퍼를 쓴다면 원두 15g에 물 210g 정도로 추출하고, 완성된 커피에서 120㎖를 덜어 사용해 보세요. 물 온도는 중배전 기준 90~93℃부터 시작하면 무난합니다. 커피가 지나치게 쓰면 분쇄도를 조금 굵게, 위스키에 묻혀 밋밋하면 조금 가늘게 조정합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어도 만들 수 있습니다. 오히려 농축된 에스프레소만 잔에 넣으면 위스키와 크림 사이에서 커피 맛이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원두는 볶은 지 오래되어 향이 빠진 것보다, 개봉 후 향이 살아 있는 것을 쓰는 편이 좋습니다. 크림과 위스키가 들어가니 아무 커피나 괜찮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식은 뒤에 남는 텁텁함은 제법 선명합니다. 반대로 값비싼 싱글 오리진을 꼭 꺼낼 필요도 없습니다. 평소 편하게 마시는 원두를 적당한 농도로 추출하는 쪽이 이 음료에는 더 자연스럽습니다.
아이리시 커피는 추위를 피하던 여행객에게 건넨 따뜻한 커피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잔을 만들 때 화려한 장식보다 온도를 먼저 봅니다. 뜨거운 커피 위에 차가운 크림이 얹히고, 그 사이로 위스키 향이 올라오는 순간이면 그 시작의 마음도 조금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